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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따라 난 ‘명예로운 보훈’...가슴에 난 ‘나라사랑 교훈’
등록일 2015-06-15 조회 11661
작성자 관리자 출처 -

[국방일보] 길따라 난 ‘명예로운 보훈’...가슴에 난 ‘나라사랑 교훈’ 

 오한마, 박보우, 심은경, 라보태.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외국 유명 인사들의 한국식 이름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알렉산더 버시바우·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 리언 라포트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각각 그 이름의 주인공이다. 이와 비슷하게 도로에도 공식도로명과 명예도로명이 있다. 공식도로명이 부여된 구간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기업유치·국제교류 등의 목적으로 명예도로명을 추가로 부여할 수 있다. 현재 전국의 명예도로명은 모두 47개. 이 중에 호국과 안보 등과 관련된 명예도로명은 모두 6개가 있다. 명예도로명은 지방자치단체 ‘도로명주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5년간 사용되며 연장도 가능하다.


보훈원·보훈요양원 등 보훈시설 밀집된 국가 보훈의 메카

보훈로 <수원 장안구> 

 경기 수원시 교육청 사거리부터 보훈원 앞까지 1.1㎞ 구간 도로. 보훈로는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호국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해방 직후 민족훈련단 종합훈련소와 육군훈련소가 있었고 1960년대부터는 6·25전쟁 유가족이 거주하는 국립양로소, 아동보육소, 직업재활원 등 보훈 가족들의 자활자립기반의 터전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국립보훈원과 수원보훈지청, 보훈교육연구원, 보훈재활체육센터, 보훈요양원, 보훈복지타운 등 보훈시설이 밀집된 국가보훈의 메카다. 그런 연유로 예전에는 이곳을 공적을 널리 알려 드러낸다는 뜻의 ‘창훈대(彰勳臺)’로 불렀다. 지금도 이곳의 도로명은 창훈로다. 수원시는 ‘보훈로’ 구간에 총 66개(33조)의 태극기와 기념깃발을 도로 양쪽에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 거리’를 조성, 운영하고 있다. 올바른 보훈의식을 갖는 것은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영원히 지키고 영현(英顯)들에 보답하는 길이다. 국가보훈이 국민을 하나로 단단히 결속하는 통합의 기능을 해야 한다. 상징적인 의미의 명예도로명 부여로 끝내지 말고 보훈의식을 널리 알리는 명실상부한 ‘보훈의 보훈로’가 돼야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나라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 이것이 ‘보훈로’에 담긴 고귀한 뜻이다.
 

서울 수복 후 처음으로 중앙청에 태극기 게양 박정모 대령 

박정모길 <전남 신안군>

 1950년 9월 27일 오전 6시10분쯤 서울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용감한 우리 장병들이 숨어 있는 적의 저격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옥상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끌어내리고,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단 것이다. 이튿날인 28일 국군과 유엔군은 적군을 내몰고 수도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당시의 주인공은 박정모 예비역 해병대령과 최국방 예비역 해병하사를 비롯한 해병대원들이었다. 카메라가 잡은 그 장면은 서울 수복을 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 사진이 됐다. 이와 관련,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내용의 표창장을 한국 해병대에 전해 무공을 치하하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은 2011년 12월 21일 박 대령의 이 같은 공훈을 선양하고 기리기 위해 신안군 도초면의 도초동부길(길이 492m)을 박정모길로 명명했다. 또한 국립대전현충원은 2014년 9월 그를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6·25 참전 터키군 주둔지…보육원 설립 아이들 돌보기도 

앙카라길 <수원 권선구>

 경기 수원 권선구 서둔동 (구)서울농대 앞 도로인 서호동로에서 서호초등학교 방향 약 450m 구간은 ‘앙카라길(Ankara-gil)’이다. 앙카라길이라 쓰인 도로명판은 명예도로 진입 지점과 중간, 끝 지점 3개소에 설치돼 있다. 앙카라길이란 이름은 6·25전쟁에 참여한 터키군 1개 대대(300명)가 지금의 농촌진흥청 내 지역에 주둔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부대 통역관이었던 지동익 씨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터키군에 요청해 앙카라 오쿨이라는 보육원을 1952년 5월경에 설립했다. 그들은 정전 이후 1960년대까지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쳤으며 1966년 잔류 중대가 철수할 때까지 생필품을 지원해 줬다. 이처럼 어려운 시절 우리 지역의 아이들을 정성껏 돌봐준 터키군의 업적을 기리고 한국과 터키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2006년 10월 13일 서둔동 45-9번지에 앙카라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 기념비는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2011년 서호천변 쌈지공원으로 옮겨졌다.

   이 일을 계기로 수원시에서는 터키군의 참전을 기념하고 앙카라 시와 교류를 하기 위해 2012년 명예도로명을 제정했다. 현재 쌈지공원은 앙카라학교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인근에는 대학생 봉사단의 재능기부로 앙카라길에 걸맞게 터키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진 마을이 조성돼 있다. 이외에도 터키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는 육군26사단 내에 세워진 영원불망기념비(永遠不忘紀念碑)가 있다. 전쟁 후 이 지역에 주둔했던 터키군이 학교를 지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주민들이 만든 일종의 송덕비다.

 

곡사포로 인민군에 직격탄…‘포병의 군신’ 김풍익 중령

풍익로 <경기 의정부시> 

  국가보훈처는 2012년 6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김풍익 육군 중령(1921.8.6~1950.6.26)을 선정했다. 전쟁 발발 당시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장이었던 김풍익 중령은 의정부 북방 축석령 고개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인민군 전차부대와 조우하자 곡사포로 직격탄을 퍼부어 적 전차부대의 전진을 수 시간 저지한 인물. 우리 군이 곡사포 직접사격으로 적 전차를 파괴한 사례는 이때가 처음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적의 포화로 부하들과 함께 옥쇄(玉碎)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50년 10월 30일 충무무공훈장과 1950년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을 받고 중령으로 추서됐다.

 2011년 12월 29일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된 풍익로는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공식 명칭은 호국로 1828길. 축석령 약간 못 미쳐 의정부 현충탑으로 가는 도로가 그것이다. 길이는 3300m. 나라를 지킨다는 뜻의 호국로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으니 딱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풍익 중령은 또 다른 영웅 장세풍 중령과 함께 영원한 포병의 군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예비역 포병장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포병전우회에서는 해마다 포병장교들을 대상으로 풍익상을 수여하고 있다. 육군 8사단에는 풍익대대가 있다.

 

6·25전쟁 작전 수행 중 전사한 미 제9군단장 무어 장군 

무어장군길 <경기 여주시>

   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단현동 남한강 변에 가면 높이 1.5m 크기의 추모전적비 하나를 볼 수 있다. 1951년 6·25전쟁 도중 전사한 무어(Bryant Edward Moore) 장군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그의 죽음은 중공군에 대한 미군의 대공세인 ‘킬러작전’과 관계가 있다. 킬러작전은 중공군의 2월 대공세에 대한 유엔군의 반격이었다. 이 작전에서 주공을 맡은 미 제9군단장 무어 소장은 작전 초기인 51년 2월 24일 도하작전 지휘·정찰을 위해 탑승한 헬기가 고압전선에 걸려 여주 근처 한강에 추락했다. 1월 31일 부임해 3주 만에 첫 작전에서 전사한 것이다. 그해 10월 주한미군은 추모비를 세워 안타깝게 전사한 그의 넋을 위로했다. 추모비는 이후 4대 강 살리기 사업 부지에 편입되는 바람에 임시 철거됐다가 현재의 여주 강천보 인근으로 옮겨졌다. 여주시는 2012년 4월 20일 무어 장군의 뜻을 기리고 한미우호 증진에 기여하고자 추모비 인근의 도로인 신단1길(매룡동288번지에서 단현동 59-7번지까지) 1712m를 무어장군길로 명명했다.

 

6·25전쟁 수많은 전공…‘빨간 마후라’ 주인공 유치곤 장군 

유치곤길 <대구 달성군>


   지난달 20일 대구 달성군 유가면. 이곳에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며 6·25전쟁 중 전투기 조종사로 공을 세운 유치곤 장군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가 생겼다. 대구지방보훈청은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달성군에 명예도로명 지정을 건의했고 이에 달성군은 도로명주소심의위원회를 열고 유가면 휴양림길 중 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에서 현풍 방향 620m 구간을 ‘유치곤길’로 명명하기로 했다.

 유치곤 장군은 1927년 달성군 유가면에서 출생, 6·25전쟁 당시 한국 공군사에서 유일하게 200회 이상 출격했으며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평양대폭격작전 등 주요 작전에 참여해 눈부신 공을 세웠다. 특히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은 유엔군이 500여 차례나 시도해 성공하지 못했지만, 장군은 단 한 번의 초저공 비행으로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한국 공군 역사상 최고의 조종사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장군의 뜻과 조국애를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2005년 6월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이 개관됐다. 이곳에는 장군의 유품과 한국공군 발달사, 그리고 ‘빨간 마후라’와 한국공군의 활약상 등 호국 관련 영상물이 전시됐다.

  전국에는 이처럼 호국보훈·안보 관련 사연을 지닌 도로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전쟁의 교훈과 자유 수호 의지를 되새긴다면 어떨는지. 그것이 나라의 위기를 맞아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정신을 받드는 길이며, 그들이 지키고자 한 대한민국을 온전히 보존해 나가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